The Black Experience in Korea: The Moment I Woke Up

한국의 흑인으로서의 경험: 내가 깨어났을 때

The Black experience is something that now, more than ever, has been coming out of the woodwork. One thing that can be said is that there are similarities between the experiences of Black people around the world. Through these similar experiences comes a sense of unity and strength. Unity is something that if used properly, can cause a necessary ruckus or bring people closer together as one voice. On the other hand, sometimes those voices need to be heard separately. So with that, I’d like to introduce myself in this series of Black voices in Korea.

흑인으로서의 경험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 흑인들이 겪는 경험에는 유사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슷한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일체감을 느끼며 서로에게 힘을 실어줍니다. 이런 일체감이 적절히 사용된다면 꼭 필요한 소동을 일으키거나 여러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그 목소리들 하나하나에 개별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의 흑인 목소리’ 시리즈를 시작하기 앞서 제 소개를 먼저 하려고 합니다.

Photo by Jam

A little about me…
저에 대한 소소한 소개

I’m from New York City and I’ve been living in South Korea for almost five years now. I first visited the country in late 2011 and fell in love with what I thought was all of Korea. For a guy who fights against stereotypes, I sure had some of my own.

저는 뉴욕 출신으로, 한국에서 지낸 지는 이제 5년이 다 되어갑니다. 2011년 후반,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하였고, 한국의 모든 것 이라고 생각했던 것들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항상 주위의 고정관념과 맞서 싸우는 저에게도 선입견이라는 건 있었나봅니다.

I visited Seoul and, through my quick infatuation, devised a plan to return. I would return home, finish my undergraduate degree, get my master’s degree in English education, and return as quickly as possible to begin a life that I’d fantasized about. I did exactly that. In 2015, I returned to Korea with a master’s degree in ESL, and four years’ worth of cramming Korean language, history, pop culture, music, politics, geography, and traditional culture into my head. I was determined to return as the “perfect” English teacher. Language is my greatest passion and I wanted to pass it onto whoever I would teach. I was absolutely ready.

한국에서도 서울이라는 도시에 첫눈에 반한 저는 이곳으로 다시 오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고향에 돌아가 학사 과정을 마치고 난 뒤, 영어 교육(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이하 ESL) 석사 학위를 취득하여 최대한 빨리 제가 꿈꾸던 삶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정확히 이행했죠. 2015년, 저는 ESL 석사 학위, 그리고 4년 동안 벼락치기로 머릿속에 욱여 넣은 한국의 언어, 역사, 대중문화, 음악, 정치, 지리, 전통문화와 함께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완벽한” 영어 선생님으로서 한국 땅을 다시 밟겠노라 다짐했던 저의 의지는 완강했습니다. 언어는 저의 대단한 열정이었으며, 제가 앞으로 가르치게 될 그 어느 누구에게든 이를 전해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But, I’d forgotten about one thing….

Oh, right. 

I’m a Black man. 

헌데 제가 한가지 잊고 있던 게 있습니다.

아, 참.

나 흑인 남성이지.

During my four year journey to returning to Korea, I was involved in a Korean cultural club at my university. There, I learned as much as I could. This included the various stereotypes, prejudices, and racism some Koreans held or had been aware of regarding Black people. This includes all of the greatest hits: 

  • Basketball abilities
  • Musical abilities
  • Physical superiority in everything
  • Women-stealing playboy
  • Being poor and uneducated
  • Being a natural at anything I put my mind to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4년이라는 준비 기간 동안 저는 대학의 한국 문화 동아리에서 한국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거라곤 전부 배운 것 같습니다. 일부 한국인들이 흑인을 향해 지니고 있는, 또는 그들이 알고 있는 고정관념, 편견,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의 정도들을 포함해서 말이지요. 그중에서 가장 흔한 몇가지를 꼽자면,

  • 농구에 재능이 있음
  • 음악에 재능이 있음
  • 모든 면에서 신체적으로 우월함
  • 여성들을 훔쳐가는 선수
  • 저소득과 저학력
  •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잘함

Before applying to any teaching position in Korea, I was frightened. Just as it has been my experience in job hunting in NYC, I thought I would be passed over for a white applicant. As sad as it is to say, I was hoping that my Anglo-Saxon first name, lighter complexion, and education level would get me through. 

And get through I did. I passed several interviews and was offered positions. I was able to select my first choice and head to Korea. 

한국의 교사직에 지원하기 전, 왠지 뉴욕에서 구직활동을 했을 때만큼이나 두려웠습니다. 제 이력서는 철저히 배제된 채 백인 지원자들에게만 기회가 갈 게 뻔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저는 본인의 앵글로색슨(영국, 아일랜드 기원의) 성과 비교적 옅은 피부, 그리고 학력 수준이 저를 돕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냈습니다. 면접에 합격하여 많은 곳에서 일자리를 제안 받았고 염원하던 대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Photo by Jam

Minimize the Shock
충격을 최소화하다

Upon arriving in Korea, I realized that everything that I’d prepared for was almost of no use. I did my very best to minimize any shock I’d feel while being here and yet it still happened.

한국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저는 이제껏 준비해온 모든 게 사실상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겪을 어떠한 일에도 최대한 의연하게 대처하려 갖은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충격은 충격이었습니다.

For the first month of my time living here, I cried every night because I was in a small town where everyone immediately noticed me. I walked around the streets and heard older people refer to me in a derogatory fashion because of the color of my skin. People wanted to comment on my possible abilities based on their perceptions of Black people. I worked with people who would openly express their prejudicial beliefs regarding myself and other Black people.

제가 사는 곳은 누구든지 당장 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동네라 이곳에서의 첫 달은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길을 걸었을 뿐인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 단지 제 피부색을 이유만으로 경멸스러운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사람들은 흑인에 대한 그들만의 인식에 근거해 제가 무엇에 뛰어날 것인지 저마다 한마디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일터엔 저, 그리고 다른 흑인들에 대한 편협한 가치관을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While all of these things happened to me daily, I bit my lip and endured it. I was determined to be the “good one.” It’s shameful and I am by no means that person today, but for that first year, I just nodded my head and let people talk to me in whatever way they wanted. I was “their negro” for sure. It sucked. People took advantage of me. They showed me off as if I was their prized possession.

이러한 일들을 매일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입술을 앙 다물고 참았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로 작심했으니까요. 이건 정말 창피하고 이제는 전혀 그럴 일이 없을 테지만, 첫 일 년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저에게 아무 말이나 하게 내버려뒀습니다. 저는 분명 “그들의 흑형”이었습니다. 너무 싫었어요. 사람들은 저를 이용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아끼는 소유물인 양 과시하고 다녔습니다.

They continued to use me that way until one day, I visited an establishment that I frequented with a few friends. The owner of that establishment asked me to sit with him and his friends. One of his friends wanted to “watch the Black kid dance.” He ordered me to. ORDERED. I stood up and looked at him dead in the eye and said, “No.” He didn’t like that so he knocked my hat off of my head. The owner pushed his friend and berated him for his actions. He then looked at me and apologized. This would seem like a great act but really, the owner himself had used me as a prop time and time again.

그들은 계속해서 저를 이용했습니다. 이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언젠가, 친구들과 자주 가던 한 시설에 방문했던 날이었습니다. 그곳의 사장님은 저에게 그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앉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 중 한 명이 느닷없이 “저 흑인 애가 춤추는 것을 보고싶다”며 저에게 춤을 추라 명령했습니다. 명령을요. 저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정색한 채 말했습니다, “싫습니다.” 그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저의 모자를 집어던졌습니다. 사장님은 그 친구를 밀어낸 후 그의 행동을 호되게 꾸짖으며 저에게 사과했습니다. 이게 대단한 행동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그 사장님 또한 저를 몇번이고 소품처럼 이용하곤 했습니다.

From that day forward, I never allowed myself to be used again. It was time to wake up. It was time to speak up and say no. So, I began to do so. I’ve come across people who wanted simple things: high fives, fist bumps, any sort of handshake that they associate Black people with. Any encounter I gave them became a story for them. Any picture I allowed them to take together with me was proof. Any video calls I said okay to immediately upped their social credit.

그 날 이후, 저는 두번 다시는 스스로가 이용 당하는 걸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정신을 차릴 때입니다. 싫으면 싫다, 확실히 말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이파이브, 주먹 인사, 그 밖에 흑인 하면 연상되는 악수 등의 어떻게 보면 단순한 것들을 저에게서 바라기도 합니다. 저와의 접촉은 그들에게 일종의 후일담이 되었습니다. 같이 찍어달라 부탁해 찍은 사진들이 그들에게는 증거물이 되었습니다. 괜찮다는 대답에 건 영상통화도 그들에게는 사회적 신뢰도를 올릴 수단이었습니다.

No more.

더 이상은 못합니다.

I was no longer willing to humor them. I no longer wanted to be a story for them – the Black guy they made friends with for a day. Because even in that case, they’re not looking for friendship. They’re looking for a prop to make themselves look better. I don’t refuse everyone, but when I see clear intent to use me, I do not shy away from speaking up. And you know what? It feels damn good every time I do it.

더는 그들의 비위를 맞춰줄 의향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일화 중 하나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 하루 동안 친구 했던 그 흑인 녀석. 그 경우조차 그들은 우정을 바란 게 아니기 때문이죠. 대신 그들에겐 자신들을 더 근사하게 만들어 줄 장치가 필요할 뿐입니다. 저는 모든 이를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저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뚜렷이 보일 시 제 입장을 과감 없이 표명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거 알아요? 그럴 때마다 기분이 무진장 좋다는 거.

Photo by Jam

The Fog of Infatuation Slowly Clears
콩깍지가 서서히 벗겨지다

That first year really taught me a lot about myself and about the way the world views me. I had always known that Black people are not always seen as humans by other groups, but my infatuation with Korea raised a thick fog over me. 

한국에서의 첫 일 년은 저 자신과 세상이 저를 보는 방식에 관하여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흑인들이 늘 다른 집단에 의해 같은 인간으로 비춰지는 건 아니란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한국에 이미 단단히 반해버린 제 두 눈엔 짙은 콩깍지가 드리워 있었습니다.

Being Black and a fluent speaker in Korean definitely offers a long list of strange experiences. I’ve joined anonymous KakaoTalk (a popular messaging application in Korea) groups, I’ve participated in English-Korean language exchange groups and apps, and I’ve simply walked around the places where I live at different times of day. With all of these, I’ve experienced different things.

한국어를 유창히 구사하는 흑인으로 산다는 건 다소 특이한 경험들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저는 익명으로 된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에도 참여해 보고, 영어-한국어 언어 교환 모임에 참석하고 어플도 사용해 봤으며, 제가 사는 곳 부근을 다양한 시간에 걸쳐 마냥 걸어 다녀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각양각색의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On KakaoTalk, there is something called “Open Chatting” where you can join different social groups depending on your interests. There are groups involved in sports, movies, language learning, and just social gatherings. I’ve joined so many I can’t even remember the exact number.

When I first arrived in my current city, I was looking to make friends. I had left my old city behind and arrived not knowing anyone. So, I began my journey through these open chat groups. The various groups I joined were full of folks who were new to the city, just as I was, and were seeking friends. We’d chat for long periods of time each day and a few times a week, we’d all meet at coffee shops or restaurants to awkwardly get properly acquainted. Sometimes it was fun and sometimes it was super awkward. The comment I’d always get from people was, “Wow, you really are a Black guy.” People always thought that I was just a troll or a Korean person pretending to be a Black guy who spoke Korean. I’d chuckle and say, “Yeah, it’s true.”

카카오톡에는 스포츠, 영화, 언어 학습, 혹은 단순한 친목도모 등 당신의 관심사에 기반한 다양한 사교 그룹에 참여할 수 있는 “오픈채팅”이라는 기능이 존재합니다. 저는 너무 많은 그룹에 속해있던지라 정확히 몇 개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현재 거주하는 도시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옛 동네를 뒤로 하고 와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저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정을 오픈채팅을 통해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입장한 다양한 그룹에는 저와 같이 도시에 처음 입성해 친구를 찾는 이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과 일주일에 서너 번쯤 오랜 시간을 걸쳐 대화를 나눴고 조금은 어색하게 서로를 알아가기 위하여 커피숍이나 식당에서 모임을 갖고는 했습니다. 이게 어떨 때에는 재미있었지만 어떨 때는 매우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사람들에게 항상 듣던 말은, “와, 너 진짜로 흑인이었구나”였습니다. 그들은 제가 분란을 일으키려고 하거나 한국말 하는 흑인인 척 하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저 가볍게 웃으며 말하곤 했습니다, “응. 진짜야.”

After a while, it became tedious because I’d meet racists who didn’t want non-Koreans in the chat and people who would demand that I prove my identity. I became so well-rehearsed in proving my identity that it was my opening move upon arriving to a new chatroom. I had familiar encounters with people in each group since there were plenty of folks who wanted a Black guy to be their best friend – someone they can rap with, play basketball with, and show off to other friends. Out of all the groups I was involved in, I think I can honestly say that only a handful of people truly treated me as a human being with a personality and not just “the Black guy.”

한참 후, 이 레파토리는 비한국인이 채팅방에 있는 걸 원치 않는 이들, 그리고 제 정체성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로 인해 이내 식상해지고 말았습니다. 제 자신을 증명하는 일에는 이미 도가 터서 심지어는 새로운 채팅방에 들어갈 때마다 그게 제 일종의 첫 인사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거기엔 같이 랩 또는 농구를 하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할 흑인 절친을 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 때문인지 각기 다른 그룹 내에서도 사람들과의 만남은 대개 비슷한 양상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를 “그냥 흑인 남성”이 아닌 인격을 지닌 인간 자체로 대한 사람들은 제가 속해있던 모든 방을 통틀어 손에 꼽을 수 있었습니다.

I tried my hand at language exchange groups. I found some through the application BAND and was heavily involved in one that was conducted in my city. I made some good friends there and had a nice time talking to people every Sunday afternoon, but in the end there was a lot left to be desired. I felt that it wasn’t language exchange, but simply an English study group. So, I left and began my own free language exchange group. The group that I started had its own set of strange twists and turns but instead I’d like to direct attention to the application HelloTalk.

저는 언어 교환 그룹에도 참여했습니다. 네이버 밴드라는 어플을 통해 몇몇의 그룹을 찾아냈고 그 중 제가 사는 도시에서 진행되는 한 모임에 무게를 두고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든 좋은 친구들과 매주 일요일 오후마다 대화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따지고 보면 제 바람과는 달리 미비한 점들이 많았습니다. 언어 교환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영어 스터디 모임이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곳을 떠나 자체 언어 교환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그도 그만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헬로우톡이라는 어플에 초점을 두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Oh HelloTalk…

HelloTalk is an application that is meant for language exchange but somehow lots and lots of users think of it as Tinder. In my HelloTalk profile, I wrote out a lengthy biography about myself and my reason for using the app. I topped it off by stating very clearly that I have a girlfriend and did not seek romance with anyone else. And yet, the fetishists found their way to me. At different points in time, I received messages from people who did not want to know me. They simply wanted to fulfill their fantasies. The shocking messages I received certainly made me feel like a sexual object.

오, 헬로우톡…

헬로우톡은 본래 언어교환을 위해 만들어진 어플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많고 많은 사람들에게 틴더와 비슷한 이미지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저의 헬로우톡 프로필을 보면, 제 자신에 대한 장황한 소개와 더불어 이 어플을 사용하는 이유가 적혀있습니다. 거기다 저는 여자친구가 있으니 다른 이들과의 연애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강조해놓았습니다. 그런데도 페티쉬를 가진 이들은 여전히 접근해왔습니다. 각기 다른 시간에, 저를 알아가고 싶어하기는 커녕 그저 자신들의 환상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들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는데, 그 중 특정 메시지들은 저로 하여금 성적 대상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Aside from the fetishists, HelloTalk is a place rife with unapologetic and ignorant people. I regularly spoke out against racism, prejudice, and stereotypes of any kind, and there were always people ready to argue with me on it. It was exhausting sometimes since I was arguing in my second language and sometimes the old noodle isn’t cooking the way it should be.

These experiences online were something else, but there were and continue to be days where they come at me in real life.

페티쉬를 가진 이들을 제외하고도 이 어플에는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거나 무지한 사람들이 만연합니다. 저는 자주 인종차별, 편견, 그리고 어떠한 종류의 고정관념이든간에 맞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야 했으며, 거기다 대고 언쟁할 준비가 된 사람들은 늘 존재하였습니다. 게다가 제 입장에서는 제2언어인 한국어로 논쟁한 터라 때로는 이 싸움에 매우 기진맥진해졌고, 또 때로는 머리가 마음과는 달리 잘 돌아가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온라인 상의 일들은 무언가 확실히 다른 경험이긴 했으나, 온라인 밖의 현실 세계에서도 닥쳐오기 일쑤였습니다.

In Korean there is a proverb: “Knowing is a sickness, not knowing is medicine”.

한국 옛말에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For a long time, I felt that proverb rang so true. It felt and sometimes still feels sickening to understand Korean. I am well aware of my surroundings, and not only can I recognize some Korean people’s body language towards me, I also understand the words coming out of their mouths. Here’s what I’ve heard just walking by people:

  • “Yo, yo, yo…should I say ‘wassup man’ to him?”
  • “Wakanda Forever!” (Mockingly)
  • “Of course Black bros have that body!”
  • “Hip hop, hip hop.”

Here’s what people have asked me about once they know I speak Korean:

  • “Did you have a gun in the U.S.?”
  • “Were you in a gang?”
  • “You like basketball, right?”
  • “Do you like ‘Show Me the Money?'” (Show Me the Money is a Korean rap competition show)
  • “Do you know all of the Black people in Korea?”
  • “How can I get a Black boyfriend?”
  • “Is it true that (insert ANY stereotype here)?”

오랫동안 저는 이 말이 현실과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한국인들을 이해하는 데엔 진절머리가 나있었고 사실 아직까지도 가끔은 그럽니다. 전 제 주변 환경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며 한국인들의 바디 랭귀지를 알아볼 수 있을 뿐더러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조차 이해하는데 말이에요. 아래는 제가 단지 사람들 옆을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 들은 말들입니다.

  • 야, 야, 야, ‘와썹 맨’이라고 해볼까?
  • “와칸다 포에버!” (조롱하듯이)
  • “역시 흑형들의 몸매란!”
  • “힙합, 힙합.”

다음은 제가 한국말을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들이 던진 질문들입니다.

  • “미국에서 권총 소지하고 있었어요?”
  • “혹시 깡패였어요?”
  • “농구 좋아하죠?”
  • “‘쇼미더머니(한국 랩 오디션 TV 프로그램)’ 좋아하세요?”
  • ”한국에 있는 흑인들이랑 다 아는 사이세요?”
  • “흑인 남자친구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요?
  • “(아무 고정관념이나)~라는데 사실인가요?”

Some days I am absolutely willing to talk to people, shut them down, open their minds, show them that they have a lot to learn when it comes to Black people. Other days, I am just so exhausted that I feel like I have to keep myself locked up in a dark room because it’s all too overwhelming.

어떤 날들은 전적으로 사람들과 기꺼이 대화할 의지가 있습니다. 그들을 잠시 멈춰 세우고,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열고, 아직 당신들이 흑인에 관한 문제에 대해선 배울 점이 많다는 점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요. 하지만 어떤 날들은 이 모든 게 걷잡을 수 없어 그저 지친 제 자신을 캄캄한 방 안에 가둬 놓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From the time I woke up, I’ve been trying to sway people away from thoughts of prejudice, discrimination, and racism. I’ve designed and worn T-shirts to make them think. I’ve confronted and argued to get a conversation started, and I’ve had sit-down talks with friends to gauge what they truly think of Black people.

정신을 차린 그 날 이후론 사람들로 하여금 편견, 차별, 인종차별주의를 멀리하게 하려고 줄곧 노력해왔습니다. 그들이 봤을 때 스스로를 성찰해 볼 만한 티셔츠를 직접 디자인해 입기도 하였으며, 심도 있는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다른 이들에 맞서기도, 그들과 논쟁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친구들은 앉혀놓고 그들이 진정 흑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도 했고요.

Yes it’s tiring. Yes, it’s exhausting. Sometimes I need to recharge, but somehow I am doing my very best to continue living here. I want to stay in Korea until I am very old and dead. Before dying though, I’d like to be one of the people who helped open Koreans up to the world and the Black experience.

이 모든 게 저를 지치게 합니다. 네, 지겨워요. 때로는 재충전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이 곳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저로서는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국에 머무르고 싶거든요. 다만, 죽기 전에 더 넓은 세상, 그리고 흑인으로서의 경험을 향한 한국인들의 시야를 넓히는 데에 한 몫 했던 사람 중 한 명으로 남고 싶습니다.

I’ve given what I believe to be a small sample of my experiences and thoughts while living in Korea. I hope to give more anecdotes sometime soon. For now, I want to say thank you to anyone who has read my story.

지금까지 제가 한국에 살면서 경험한 일들과 생각들의 작은 표본을 여러분과 나누었습니다. 조만간 더 많은 일화들을 꺼내보려고 합니다. 지금 당장으로선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And to all my brothers and sisters here in Korea: know that you are not alone. You are never alone.

그리고 한국에 있는 저의 형제, 자매분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결코 혼자가 아닐 거예요.

– Jam

Copy Editor: Lisa Espinosa and Eva Winfrey
Editor: Atembe Giles

Korean Translations by Alexa K, Jenny Bae, Yeongseo, and June Green
Korean Copy Edit by June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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